가나다라-적막이 달빛을 머금을 때_캔버스 위에 한지, 혼합재료_91x91_2017-2020
황인혜의 ‘한글 추상’에 대하여
한글 회화가 탄생한 배경은 199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작가는 노송과 정원수들이 우거진 ‘옥연과원’에서 부친으로부터 붓글씨를 배우며 소양을 쌓아갔다. 그의 부친 황기식(黃其式)은 경상북도 경산의 명망 높은 한학자이자 서화가로서 다방면에 탁월한 재능을 갖은 분이었다. “내 놀이마당에서 물려받은 끼를 마음껏 펼치는 기쁨이 있고 사랑으로 가득한 그리움과 고마움이 함께 있으니 정말 복되다.”(작가 노트중에서) 화목한 가정의 배경이 그에게 넉넉하고 고운 마음씨를 키워가는 데 일조한 것으로 보인다. 그의 작업에서 배어나오는 따듯하고 부드러운 분위기, 섬세하고 여린 특색도 이와 무관하지 않으리라.
1994년 부다페스트 아트엑스포를 참가한 적이 있는데 이듬해 1995년 베를린기술박물관의 기획전시인 「문자의역사」전에 초대되었다.
한지에 수묵의 필선을 가미하는 과감한 수법을 시도함으로 종래의 인체와 문자를 연결하거나 문자와 자연을 연결 짓는 방식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수묵의 필선은 그가 유년시절부터 단련해온 것이어서 그의 기량을 잘 발휘할 수 있는 것이기도 했지만 한글의 조형성에다 한지에 스며드는 농담과 번짐 효과로 인해 특별히 전통 회화에서 느낄 수 있는 고유성이랄까 동양회화의 멋을 실어냈다. 필선을 긋기도 하고 글씨를 쓴 것도 있으며 글자를 분해하여 재구성하거나 옅은 채색을 가하기도 하면서 그의 회화는 다채로운 실험을 펼쳐보였다.
현대적 조형으로 되살린 전통
그의 작품을 보면 부단히 도전하는 자세를 지켜오고 있는 점이다. 80년대 산천초목을 담채 또는 수묵으로 잔잔하게 묘출하는 것을 시작으로, ‘視空-잎새사이로,’ ‘은혜안에서(인체·문자·자연을 한 화면에 담은 작품)’ 등이 나오게 된다. 그 후 1994년부터 한글 추상을 시작하여 오늘날까지 이르게 된다.
한글을 기반으로 한 추상 회화로 분류할 수 있을 것이나 그 근거에는 삶의 요소가 관통되어 순수추상과는 구분되며, 이것은 그의 작품특성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색의 사용과 면 분할, 오브제 등을 주축으로 하지만 그것은 어떤 상징적 내용을 전달하고 농축한 요체로서 기능하는 것이지 그 자체에 의미를 부여하고 있지 않다는 이야기다. 그러니까 미술을 제한된 범주에 묶어놓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자연, 인생, 진리의 추구와 같은 문제들과 종합적으로 연관되어 있는 것이다. 즉, 한글의 자모를 이용함은 조형적 관심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역사성에 대한 긍지와 무관하지 않다. 전통 속에서 우리 문화를 재발견하고자 하는 그의 시각은 전통과 현대 그 어느 것도 부정하거나 배제하지 않고 전통을 바탕으로 하되 현대적 조형의 체로 걸러냄으로써 더욱 호소력을 갖게 한다.
서성록(안동대 미술학과 교수) 평론 중 발췌
황인혜 1946생
-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 (한국화 전공)
- 개인전 33회 (서울, 대구, 부산, 뉴욕, 샌프란시스코, 베를린, 파리, 덴마크)
- 아트페어 50여회(MANIF, KIAF, SOAF, 화랑미술제, 부다페스트, 모로코아씰라, 시드니, 뉴욕, 베이징, 상하이, 취리히, 싱가포르)
- 베를린기술박물관 초대 「문자의 역사」전
- 페루현대미술전, 로마한국현대미술전
- 서초미술협회전, 한국화회전, 한울회전, 한국화여성작가전
- 국전 서예부 입선
- 남송국제아트쇼 대상
- 중앙미술대전 특선